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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가 멈추자 규칙을 쓰는 SEC…클래리티법 공백 메우는 '규정 정치'

미국 상원에서 시장구조법(CLARITY Act)이 좌초한 뒤 SEC와 CFTC가 규칙 제정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다. 20일 의견수렴을 마친 SEC의 토큰 발행 규정안이 그 중심에 있지만, 법률보다 쉽게 뒤집힐 수 있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6분 읽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가상자산 발행 규정안 '레귤레이션 크립토 애셋(Regulation Crypto Assets)'에 대한 공개 의견수렴이 20일(현지시간) 마감됐다. 업계와 월가 단체들이 막판까지 수정 요구를 쏟아냈다. 이 규정안은 한 달 전 상원에서 막힌 시장구조법, 이른바 클래리티법(CLARITY Act)의 빈자리를 행정부가 직접 메우려는 시도의 핵심이다. 미국 가상자산 규제의 무게중심이 의회에서 규제기관으로 옮겨가고 있다.

배경

클래리티법은 가상자산 시장의 관할을 나누는 법이다. 디지털 상품과 그 현물시장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증권 성격의 자산과 일부 발행 단계 거래는 SEC가 맡는 구조를 법으로 못 박으려 했다. 하원은 2025년 7월 17일 294대 134라는 초당적 표차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 은행위원회도 올해 5월 수정안을 처리했다.

막힌 곳은 상원 본회의였다. 9월 15일 법안 심의 개시를 위한 토론종결 표결은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부결됐다. 가결에 필요한 60표에 한참 못 미쳤고, 민주당에서는 찬성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공화당에서도 이탈표가 있었다. 그중 톰 틸리스(Thom Tillis) 의원의 반대는 절차적 선택이었다. 표결 직후 재심의 동의를 내 법안을 다시 올릴 길을 열어 뒀다.

걸림돌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연방 공직자의 가상자산 보유를 다루는 윤리 조항이다. 민주당은 초안이 대통령과 그 가족의 가상자산 사업을 실효적으로 규율하지 못한다고 봤다. 공화당은 민주당 요구를 반영해 100건 넘는 수정을 했다고 맞섰다. 다른 하나는 스테이블코인 보상, 즉 이자 성격의 수익 지급 문제다.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이 예금을 빨아들일 수 있다며 더 강한 제한을 요구해 왔다.

현장과 데이터

올해 규제기관의 움직임을 시간 순으로 놓으면, 상원 표결을 전후해 속도가 붙은 흐름이 선명하다. 출발점은 3월 17일이다. SEC와 CFTC는 공동 해석을 내고 가상자산을 디지털 상품, 디지털 수집품, 디지털 도구,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증권의 다섯 갈래로 나눴다. 이 가운데 앞의 세 유형은 증권이 아니라고 봤다. 법률이 해야 할 분류 작업을 해석으로 먼저 한 셈이다.

8월 18일에는 SEC가 레귤레이션 크립토 애셋을 제안했다. 골자는 세 가지다. 먼저 소규모 프로젝트를 위한 창업 면제다. 4년 동안 최대 500만 달러까지 등록 없이 토큰을 팔 수 있고, 같은 자산에는 한 번만 쓸 수 있다. 다음은 자금조달 면제다. 12개월마다 최대 7,500만 달러까지 조달할 수 있지만 재무제표 제출과 정기 보고 의무가 붙는다. 마지막은 투자계약 세이프하버다. 발행인이 약속한 핵심 경영 활동을 마쳤거나 영구히 중단했다고 서류로 입증하면, 그 토큰은 더 이상 투자계약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면제 요건을 지키는 발행에는 주(州) 증권 등록 의무도 연방 차원에서 배제된다.

상원 표결 이틀 뒤인 9월 17일에는 두 기관이 동시에 움직였다. CFTC는 '가상자산 거래 및 시장 규정'이라는 이름의 규칙 제정안을 백악관 정보규제국(OIRA)에 보냈다. 아직 본안 공개 전인 사전 단계다. 같은 날 SEC는 '혁신 면제'라는 이름의 면제 명령을 즉시 발효했다. 미국 상장 주식을 토큰화해 자동화 마켓메이커(AMM) 방식으로 온체인에서 거래하는 길을 5년 기한으로 열어 준 조치다. 허가된 이용자만 참여할 수 있고 종목 수와 거래량에 상한을 뒀다. 10월 1일에는 투자자문사와 펀드가 가상자산을 수탁하는 방식에 대한 규칙안도 나왔다.

그리고 10월 20일 레귤레이션 크립토 애셋의 의견수렴이 끝났다. 더블록 집계로 마감 시점까지 접수된 의견서는 100건을 넘었다. 업계의 요구는 대체로 문을 더 넓혀 달라는 쪽이다. 블록체인협회(Blockchain Association)는 창업 면제 한도를 1,000만 달러로, 자금조달 면제 한도를 1억5,000만 달러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에어드롭과 네트워크 보상은 한도 계산에서 빼고, 규정 시행 전에 발행된 토큰은 거래소 같은 제3자가 대신 서류를 낼 수 있게 하자는 내용도 담았다. 서류 제출이 과거에 증권이었다는 인정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해 달라고 했다. 하이퍼리퀴드 정책센터(Hyperliquid Policy Center)는 대가 없는 에어드롭은 증권이 아니라는 점을 규정에 명시하고, 세이프하버 요건이 너무 좁다고 지적했다. 반면 자산운용·증권업계 단체들은 투자자 보호 장치와 공시 기준을 먼저 다듬으라고 요구했다.

쟁점

첫 번째 쟁점은 지속성이다. 규칙은 법률보다 빠르지만 그만큼 약하다. 다음 행정부가 다른 규칙으로 덮어쓸 수 있고, 법원에서 권한 범위를 두고 다툼이 벌어질 여지도 크다. 법무법인들이 공통으로 짚는 대목이다. 폴 앳킨스(Paul Atkins) SEC 위원장 스스로도 규정안을 발표하며 오래 갈 규칙에는 결국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SEC가 클래리티법 통과를 지지한다는 입장도 함께 냈다.

두 번째는 기준선의 높이다. SEC는 투자계약과 그 대상이 되는 토큰을 분리해 보는 접근을 택했다. 업계는 이 방향을 반기면서도 한도가 낮고 세이프하버 문턱이 높다고 본다. 반대로 월가 쪽은 공시와 투자자 권리 설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같은 규정안을 두고 한쪽은 너무 좁다고, 다른 쪽은 너무 느슨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세 번째는 의회와 규제기관의 역할 분담이다. 상원 협상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 7명은 부결 직후 이번 결과가 끝이 아니라며 초당적 합의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7명과 틸리스 의원이 모두 찬성으로 돌아서도 57표로, 여전히 3표가 모자란다. 규제기관이 앞서 나갈수록 의회의 입법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반대로 규칙이 입법의 밑그림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엇갈린다.

전망과 체크포인트

첫째, 중간선거 이후의 레임덕 회기다. 미국 중간선거는 11월 3일 치러진다. 업계와 법률가들은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열리는 레임덕 회기를 이번 의회에서 클래리티법을 살릴 현실적인 마지막 창구로 본다. 예측시장이 반영한 연내 입법 확률은 부결 직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선거 결과에 따라 협상 구도가 바뀔 수 있다.

둘째, CFTC 규칙안의 공개 시점이다. 사전 단계 문서가 정식 제안으로 넘어와야 의견수렴이 시작된다. 구속력 있는 규칙이 나오기까지는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셋째, SEC가 의견서를 얼마나 반영해 최종 규칙을 내놓느냐다. 특히 한도 상향, 기존 발행 토큰의 처리, 에어드롭 기준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미국 내 토큰 발행 환경이 달라진다.

넷째, 국내 시장에 대한 함의다. 미국의 분류 기준과 발행 규칙은 해외 프로젝트의 사업 구조와 공시 수준에 직접 영향을 준다. 국내에서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행과 공시 규율을 논의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입법 대신 규칙으로 쌓아 가는 체계가 어떤 모습이 될지 참고할 대목이 많다.

본 기사는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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